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e 262 (문단 편집) == 문제점 == 그러나 Me 262는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 엔진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엔진의 수명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성이다. 이 중 수명은 Me 262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연합군의 J33 엔진도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엔진 수명이 100시간을 넘기지 못한 정도였다.[* 이러한 제트 엔진들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종전 후에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엔진이 안정화되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연합군의 J47 엔진도 오버홀을 15시간 단위로 하도록 추천되고 있었으니 사실 유모 004 엔진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거기다 대전 말에 독일 사정상 [[레어메탈]]의 수급이 어려워졌고,[*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발칸 전선이 무너지면서 터키로의 무역로가 봉쇄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스페인으로의 무역로가 봉쇄되면서 희소자원에 대한 수입로가 대폭 줄어들었다.] 폭격으로 인해 엔진 공급망 자체가 박살나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바람에 레어메탈을 써야 고온과 고압에 견딜 수 있는 엔진을 강철로 만들고 비숙련 노동자들도 만들 수 있게 제작 난이도도 낮춰야 하는 문제까지 겹쳤으니 엔진의 수명이 길면 그게 신기한 일이다.[* 영국과 소련 모두 전후 유모004 엔진을 쉽게 카피했는데. 이는 내열성이 필요한 터빈 블레이드와 연소실에서 레어메탈의 비율이 형편없이 낮았고, 제작 난이도와 제작에 사용된 공구와 공작기계도 낮은 기술력을 요구한다.[[https://en.m.wikipedia.org/wiki/Junkers_Jumo_004|#]]][* 그런데 이는 제트 엔진의 전반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유모 004 엔진의 생산 시간 및 생산 비용이 당시 독일의 최신형 수랭식 전투기들의 피스톤 엔진보다 1/3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당시 축류식 엔진들은 급격하게 러더를 차서 사이드 턴을 걸었을 때 엔진으로 공기가 제대로 흡입되지 못해 엔진이 정지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영국군이 원심식 엔진을 사용한 반면 Me262는 축류식 엔진을 사용했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 축류식 엔진 자체 설계는 원심식 엔진보다 효율 및 추력이 우수해 현대 항공기용 엔진은 어지간하면 축류식을 쓰고 있다. 문제는 당시 축류식 엔진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는데 독일은 이런 문제를 뭉개고 어거지로 실전에 내보낸 것. 당장 미국은 43년도에 독자적인 축류식 엔진인 [[https://en.wikipedia.org/wiki/Westinghouse_J30|J30 엔진]]을 만들어 냈으나 독일과 마찬가지로 갖은 문제를 일으켜 45년 1월에 [[FH 팬텀]]에 겨우 달았고. 영국도 1941년에 축류식 엔진인 [[https://en.wikipedia.org/wiki/Metropolitan-Vickers_F.2|메트로폴리탄-비커스 F.2]]를 개발하고 43년에는 미티어의 시제기 중 1대에 시험적으로 장착해보기도 했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원심식 엔진을 사용하나 이것도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으로 축류식 엔진에 비해 나을 게 없었다. 그와 별개로 기술개발은 계속되어 암스트롱-시들리와 롤스로이스도 각각 43년과 45년부터 축류식 엔진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롤스로이스는 46년도 초에 [[https://en.wikipedia.org/wiki/Rolls-Royce_Avon|롤스로이스 에이본 엔진]]을, 48년도는 메트로폴리탄-빅커스의 프로젝트를 인수해서 만든 [[https://en.wikipedia.org/wiki/Armstrong_Siddeley_Sapphire|암스트롱-시들리 사파이어 엔진]]을 내놓았다. 특히 에이본 엔진은 유모 004 엔진이나 J30 엔진과 다르게 안정적인 성능 덕분에 [[J35|사브 드라켄]]과 [[호커 헌터]], [[잉글리시 일렉트릭 캔버라]], [[BAC 라이트닝]]에 들어갔고, 사파이어 엔진은 미국 라이트사에 J65 엔진으로 라이센스 생산이 되어 [[A-4]]와 [[F-84 썬더제트]]에 채용이 되었지만 회사와 함께 롤스로이스로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성능은 에이본보다 뛰어났고 에이본 엔진 후기 개량형은 사파이어 엔진의 압축기를 그대로 박아넣었을 정도였다.][* 당시 영국식은 원심식이라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크게 만들어야 하는데, 엔진이 차지하는 공간을 고려하면 공기역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제한이 있다. 그에 반해 독일식은 축류식이라 축에 팬을 추가하면 추가할수록 속도를 빠르게 해서 영국식보다 유리했다.] 이 문제는 이후 [[J79]] 엔진에 가변 터빈을 채용해서 해결됐다. 뿐만 아니라 강철로 만들고 QC 그런 거 없이 급하게 만든 댓가로 엔진의 스로틀을 급하게 조정하거나 수명이 다하면 불이 붙거나 폭발하는 문제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급격한 턴을 도는 상황과 이/착륙 도중에는 사실상 정지표적이나 다름없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격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 전투기들은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격추를 했다. Me262를 채용한 '코만도 노보트니' 비행단의 단장이자 독일의 에이스인 발터 노보트니 중령도 엔진 고장으로 귀환, 착륙하는 중에 [[P-51 머스탱]]의 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 아돌프 갈란트 중장이 비행단을 방문하고 있었던 관계로 노보트니 중령의 추락을 직접 목격했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독일은 제트 엔진 폭격기 [[Ar 234]]도 배치했는데, 이 폭격기도 역시 유모004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Me 262에 들어갈 엔진이 Ar 234로 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나... * 낮은 연비 제트 전투기는 프로펠러기보다 연료 소모가 훨씬 빠르다. Me 262가 배치되는 1944년 4월에는 독일이 대량으로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플로이에슈티(Ploieşti) 유전이 B-24에 의해서 유전 설비들이 박살났고, 8달 뒤에는 소련군에 의해 루마니아를 상실함으로써 수지가 안 맞는 석탄 액화기술 외엔 석유 수급이 안돼서 연료 부족에 골머리를 앓던 독일 상황에서는 Me262 한 대 운용할 연료로 Bf109나 Fw190을 3대 운용하는 게 나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옥탄가가 낮은 제트 엔진용 연료를 피스톤 엔진에 넣게 된다면 노킹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왕복 엔진이 고장이 나서 대체도 불가능 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이 제트기를 만들려고 한 이유가 기름이 없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레시프로 엔진은 제대로 된 항공용 가솔린을 넣어야 하는데 제트 엔진은 [[송근유]] 같은 잡다한 기름으로도 돌릴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사실 이게 모든 국가들이 제트 엔진으로 넘어가는 원인 중 하나이다. 앞에 언급되었듯이 생산성 좋고, 연료도 싸고, 속도도 잘 붙는다. 프롭기를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그러나 같은 연료로 프롭기 3대를 굴린다는 것도 사실 어폐가 있는 주장인 게 262에 들어가는 연료는 무려 65옥탄가여도 엔진이 무리 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프롭기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87옥탄가, 프롭기가 제대로 성능을 내려면 95 옥탄가(당시 나치 독일에서는 C연료라 불린다)가 필요하다. 이러지 않으면 피스톤 엔진 특성상 노킹이 일어나기 때문. 그러한 저옥탄 개솔린의 노킹은 고고도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다. 그리고 폭격기들과 미군기들은 고고도로 비행했다. 이렇게 저질 연료를 먹고 날아오는 프롭기들은 150(혹은 145)옥탄가를 먹고 다니는 연합군 기체들에게 처참하게 관광당한다.[* 비행 시뮬에서는(공개된 자료만 보고 만들기 때문) 109가 저고도에서 머스탱보다 빠르지만 실제로는 훨씬 느렸다. 이 연료 보급 문제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요즘 자동차들처럼 컴퓨터로 조종되는 엔진 분사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노킹을 방지하려면 고옥탄가 연료가 필수였다. 그러나 262는 정제 과정을 훨씬 줄여버려도 되는 연료를 사용해도 엄청난 성능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제트기는 프롭기와 반대로 기본적으로 속도가 빨라질수록 엔진 파워마저 강력해지니 금상첨화.[* 당시 항공부대 장군 위치였던 아돌프 갈란트가 109를 5대 배치하느니 262 한 대 배치하겠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닌 것이다.] * 일선부대의 기피 현상과 부족한 훈련 시간 시제기의 비행 성능을 보고 큰 인상을 받은 히틀러는 Me262를 폭격기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물론 이 사건은 개발이 다 끝난 뒤에, 양산에 들어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라서 히틀러 탓에 Me262의 개발이 늦어진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전투기 버전과 폭격기 버전의 차이라고 해봐야 기관포 2문이 더 추가되고 폭장에 사용할 파일런이 없다는 점이라서 야전부대에서는 폭격기형에서 폭탄창을 철거하고 기관포를 2문을 추가로 장착해서 전투기로 개조한 다음 요격임무에 내보내버렸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는 처음에는 열받아서[* 당시 전투기총감인 [[에르하르트 밀히]]가 이 때문에 실각당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 밀히의 실각은 Me262 생산이 본격화되기 전인 1944년 8월의 일이었기 때문에 Me262의 생산 문제보다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달 효율이 낮고 본토 방공전 전략에서 히틀러 및 괴링과의 의견 충돌이 심했던 탓이 더 크다.] 유모 엔진의 생산량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등,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조종사들을 폭격기 조종사로 훈련시키도록 했는데 전선에서는 Me262를 폭격기로 운용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결국 선회하다 제풀에 추락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이런 폭격기 파일럿들이었다.[* 물론 태평양 전선의 미 해군도 폭격기 및 뇌격기 조종사들을 전투기 조종사로 기종 전환시키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당시 독일의 상황은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후술하듯 훈련기의 숫자도 부족해서 관숙비행도 없이 출격하는 게 당시 독일의 현실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전투기 버전을 소량[* "20대 중에 한 대 정도는 전투기로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생산하기로 했을 때는 이미 1944년 9월인데 그것도 쌍발 제트 폭격기 [[Ar 234]]가 양산이 되기 시작해서 허가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갈란트가 주력 기종을 Me262로 변경하자고 건의했지만 괴링은 그 의견을 묵살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부분의 베테랑 조종사들은 믿음이 안가는 '최신예' 전투기보다는 손에 익은 기존의 Bf109나 Fw190을 더욱 선호했기 때문에 기종 변경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고, 기종 변환을 한 조종사들이나 초보 조종사들이나 다들 생소한 기체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으므로 Me262 조종사의 질은 당연히 낮아졌다. 여기에 2인승 훈련기인 B-1a의 수도 모자라서 갓 배치된 조종사가 관숙비행[* 본인이 탑승하는 전투기의 조종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비행이다.] 없이 짦은 지상교육과 8시간의 기초교육만 받고 그대로 출격하는 막장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 부족한 생산량에 비해 많은 파생형 * 연합군에게 빼앗긴 제공권 전쟁 말기쯤 되면 연합군의 전략폭격 덕분에 사방으로 흩어진 메서슈미트 사의 생산라인에서는 전문공도 기술자도 자원도 연료도 부족했다. 그러니까 대충 구색만 갖춘 허접한 공장에서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풋내기 기술자들에 의해서 조립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일설에 따르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필요한 만큼의 수량을 채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만이 생산되었지만 저 상황에서 그 정도라도 생산해낸 게 어디냐는 말도 있다.[* 그나마 엔진 생산 속도가 프롭기보다 3배 빠르기에 저만한 생산량이라도 채운 것으로 보인다.] 양이 적으니 당연히 한 번에 투입되는 수도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Me262는 연합군에게 꽤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잡았고 이 때문에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Me262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는 비행장은 몽땅 쑥대밭으로 만들어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비행장이라고 해도 그 근처에는 냄새를 맡고 달려온 P-51 머스탱 같은 연합군 전투기들이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여기에 위에 언급된 엔진 문제와 겹쳐서 Me262는 자기 집에서 이착륙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었다. [[발터 노보트니]]의 전사도 이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JV-44]]에서는 Me262를 엄호하기 위해 별도의 [[Fw 190]] 부대를 두었는데 이 부대가 바로 '파파가이 슈타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